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부춘화

夫春花

1908. 4. 6 ~ 1995. 2. 2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부춘화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제주(濟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3) 1908년 4월 6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구좌면(舊左面) 하도리(下道里)에서 아버지 부원돈(夫元敦)과 어머니 김천욱(金天頊) 사이에서 태어났다. 민중운동자협회에서 항일 활동을 전개한 부승림(夫升琳)의 동생이다. 15세 무렵부터 해녀로 생업에 종사하였다. 1927년부터 하도보통학교 부설 야학인 하도강습소에서 김순종(金順鍾)·오문규(吳文奎) 등으로부터 한글을 비롯한 한문 기초교육과 역사, 『농민독본』·『노동독본』 등 신지식 교육을 받으며, 민족과 계급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해녀 노동의 가치에 대해 자각하였고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1928년 제주도해녀어업조합 산하 조직인 구좌면 해녀조합 대표에 선임되었다. 당시 일제에 어용화된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은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불공평한 조건으로 매입, 해녀들의 권익을 착취하고 무리하게 조합비를 징수하였다. 1931년 5월 해녀어업조합에서 생전복과 감태의 가격을 지정하고 등급을 내려 해녀들에게 큰 손해를 끼쳤다. 일제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김옥련(金玉蓮)·부덕량(夫德良)과 함께 투쟁하기로 결의하고, 1932년 1월 7일 해녀 300여 명을 규합하여 하도리에서 세화(細花)장터까지 시위행진을 벌였다. 1932년 1월 12일 제주도사(濟州島司)가 세화경찰주재소를 방문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해녀 700여 명을 구좌면 세화리에 집결하여 시위를 벌였다. 호미와 빗창(전복 따는 도구)을 들고 “우리들의 요구에 칼로써 대응하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대응한다”라고 외치며 항의 시위를 주도하였다. 해녀들은 제주도사를 포위하고 요구 사항을 낭독하며 해결을 촉구하였다. 이 일로 1932년 1월 24일 동료 2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 소식을 들은 해녀들이 경찰과 충돌하여 경찰 1명이 부상당하고 해녀들 중에서도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6월, 집행유예 6월을 받았다. 풀려난 후 일본 오사카(大阪)으로 건너가 여공으로 일하면서 교포 여성들을 위한 계몽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