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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길

朴世吉

1876. 8. 9 ~ 1946.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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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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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義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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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1) 1876년 8월 9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비안면(比安面) 쌍계동(雙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2일 비안면 쌍계동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의성 출신 김원휘(金原輝)는 1919년 3월 3일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평양에 체류하던 중 그곳의 만세운동을 목도하였다. 이에 진학 대신 독립을 위해 자신의 고장에서도 만세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결심하고 곧장 의성으로 돌아왔다. 귀향 후 곧바로 비안면 쌍계동 장로교회 목사 박영화(朴永和)를 찾아가 만세운동을 준비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두 사람을 비롯한 지역의 기독교계 인사들은 3월 6~7일경 쌍계동과 안평면(安平面) 괴산동(槐山洞)의 교회당에서 만나 서울과 평양지역에서의 만세시위와 이에 호응하여 발생한 전국적인 만세운동의 추이로 볼 때, 조만간 완전한 자주독립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러한 절호의 기회에 침묵으로 일제의 강압적 지배에 순종하는 것은 지역민 전체의 수치라고 여기고, 독립을 향한 의지와 열망을 드러내고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합의하였다. 회합 이후 주도자들은 만세시위에 참여할 인물을 물색하고자 주변에 거사 준비 소식을 은밀히 전파하면서 동지 포섭에 나섰다. 이 계획을 듣고 적극 찬성하며 거사에 동참하기로 약속하였다. 뿐만 아니라 동료인 배도근(裵道根)·이일만(李一萬)·김명출(金明出) 등에게 알려 이들을 새로운 동지로 규합하는데 활약하였다. 박영화와 그의 동생 박영신(朴永新), 그리고 배중엽(裵重曄)·박영달(朴永達) 등은 3월 12일 박영신의 집에서 만나 태극기 200여 개를 제작하였고, 이날 정오를 기해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3월 12일 오후 1시경 집합 장소인 쌍계동 박영신의 집 앞 도로로 갔다. 그곳에는 이날 오전 비안공립보통학교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거행한 뒤 합류한 학생과, 거사 소식을 듣고 모인 주민 등 2백여 명이 운집해 있었다. 동지들과 함께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면서 시위대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온 동네를 행진하였다. 오후 4시 만세시위의 급보를 받은 의성경찰서에서 출동한 일제 경찰이 주도자의 검거에 나섰는데, 이때 동지들과 붙잡혔다.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동일한 형량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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