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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해

朴性海

1898. 12. 24 ~ 1929.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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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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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부산(釜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부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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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98년 12월 24일 경상남도 부산부(釜山府) 좌천동(佐川洞, 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부산상업학교(釜山商業學校)에 재학하였으며, 3월 13일 동래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초순 평양에 살던 지인 신현수(申玄守)로부터 평양에 독립만세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송부 받고, 부산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3월 9일 시험 준비를 위해 자신의 집을 방문한 최익수(崔益守)·김태곤(金兌坤) 및 6명에게 선언서를 보여주며 다른 지역처럼 시위운동을 일으키자고 권유하였고, 모두 이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김태곤·최익수와 함께 동래고등보통학교(東萊高等普通學校) 학생과 연대하기 위해 선언서를 가지고 동래면 복천동(福泉洞) 엄진영(嚴進永)의 집을 방문해 이상덕(李相德) 등과 만난 뒤, 이들과 함께 수안동(壽安洞) 이한주(李漢周)의 집에 들러 김귀룡(金貴龍)·고영건(高永建) 등 10여 명의 학생들과 만났다. 이어 부산상업학교 학생들의 결속 사실을 알리고 독립선언서를 나눠주며 만세시위를 권유하였다. 이들은 3월 13일 동래시장 장날을 기하여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1일부터는 이한주의 집에서 독립선언서 500부를 인쇄하고, 독립만세 깃발 2개, 태극기 수백여 개,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의미인 ‘오왕모살(吾王某殺)’이라 쓴 종이 수백 장을 제작하였다. 거사일인 3월 13일, 주동자들과 함께 장날을 맞이한 동래시장으로 갔다. 준비한 인쇄물을 군중에게 배부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망미루(望美樓)와 동래읍성 남문 부근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만세시위 주도자로 지목되어 일제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1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그 해 6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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