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운
朴聖云1892. 3. 16 ~ 1943. 3.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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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92년 3월 16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송전리(松田里, 현 당진군 대호지면 송전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박성운(朴聖雲)을 사용하였다. 서울과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은 서산군에도 전달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서울과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1919년 4월 4일로 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마을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4일 아침 면사무소 앞에 약 500명의 주민이 모였는데, 이날 함께 참가하였다. 면장 이인정이 만세운동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자 군중과 함께 이에 호응하며 만세를 외쳤다. 시위가 시작되자 군중은 약 800명으로 증가하였고, 7km떨어진 정미면 천의장터로 이동하여 만세를 불렀다. 시위대와 함께 천의경찰관주재소와 정미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일대를 행진하였다. 오후 4시경 시위대 해산을 목적으로 출동한 일제 경찰들이 위압적 해산 명령과 함께 군중을 향해 총을 발사하였다. 격분한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몰려가 일본인 순사와 한국인 순사보를 구타하고 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의 양상이 격렬해지자, 진압을 위해 일제 군경의 병력이 증파되었다. 서산경찰서와 당진경찰서에서 경찰 8명, 일본군 홍성수비대에서 보병 5명이 파견되었고, 서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도 진압에 동원되었다. 시위대는 결국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만세시위 주도자와 적극 가담자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가 시작되었는데,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24일 서산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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