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요
朴性堯1893. 3. 15 ~ 1932.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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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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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3년 3월 15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충화면(忠化面) 팔충리(八忠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천도교도로, 3월 2일 부여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3월 6일 임천면(林川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일 오후 6시경 충남 논산(論山) 천도교구에서 전북 익산(論山) 함열(咸悅) 천도교 교구원인 민영순(閔泳淳)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묶음(약 40매)을 받은 김태호(金泰昊·泰午·泰吳)는 한 묶음을 가지고 오후 9시경에 부여 천도교 교구에 도착하여 김종석(金鍾錫)·황우열(黃宇烈) 등 3명에게 전달하였다. 당시 교구실에 최규석(崔奎錫)·이범인李(範仁) 등과 함께 있다가 김종석, 황우열 등이 배포를 요청하자, 그날 밤 즉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기로 결의하고 각자 분담하였다. 김종석 등에게 독립선언서 5매를 받아 교구실을 출발하여 규암리(窺岩里)로 이동하여 부근 도로에 살포하고 이어 나머지 몇 매를 임천 비정리(飛亭里) 박노휘(朴魯輝)에게 배포를 부탁하며 전달하였다. 황우열은 5매를 받아 다음날 오전 2시경 왕포리(旺浦里) 손익희(孫益熙) 집으로 가서 손익희·조원상(趙元祥)에게 전하며 비밀리에 살포하도록 부탁하였다. 조원상은 즉시 중정리(中井里)와 염창리(鹽倉里) 길가에 1매씩 살포하고, 3매를 오전 5시경 석성면(石城面) 현북리(縣北里)의 김덕빈(金德彬)에 배부하였다. 김덕빈은 바로 집을 나와 2매를 염창리 길가에 살포하고 1매를 초촌면(草村面) 신암리(莘岩里) 강면기(姜勉基)에게 전달하였다. 이범인은 2매를 받아 1매를 이범석(李範石)에게 주어 은산시장 김팔만金(八萬)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충남 지역에는 3월 2일에 논산과 부여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어 배포되기 시작하였으나 만세시위로 연결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독립선언서 배포를 주도하였던 인사들은 “교주 손병희가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손병희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독립만세를 부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3월 6일 아침 박용화(朴容和) 집에서 박용화·황우경(黃宇京)·황금채(黃金彩)·문재동(文載東)·정만동(鄭萬同)·최용철(崔容澈) 등과 모여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주민들을 모아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고자 오전 7시경에 임천 읍내에 도착하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독립선언서를 읍내 여러 곳에 붙였고, 황우경은 시장의 수개 소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연설을 하여 읍민들을 집합시켰다. 이어 읍내 시장에 모인 군중들과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고 면사무소와 보통학교 등으로 이동하며 만세 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박용화·최용철 등 7명과 오전 10시경에 부여헌병대 임천출장소로 가서 “경성은 이미 독립했다. 그러하니 우리에게도 독립의 권리를 부여하라”며 헌병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라고 요구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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