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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옥

朴聖玉

1897. 7. 17 ~ 1969.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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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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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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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7년 7월 17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두산리(杜山里, 현 당진시 대호지면 두산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박성옥(朴性玉)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4일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貞美面) 천의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마을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예정된 4월 4일 아침 다른 주민들과 함께 농기구를 지참하고 대호지면사무소 앞으로 갔다. 이때 모인 인원은 약 600여 명이었다. 이 자리에서 면장 이인정으로부터 도로 보수는 위장된 목적이며 실제 목적은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연설을 듣고, 이에 공감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 대열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7km떨어진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만세시위대가 천의장터에 도착했을 때는 정미면 주민까지 결합하여 시위대의 규모가 1,000여 명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더욱 사기가 올라 많은 군중과 함께 시장 곳곳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천의장터에서의 만세시위는 오후 4시경까지 진행되다가 해산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만세시위 진압을 위해 지원 나온 당진경찰서 소속 순사들과 일부 시위 참여자들이 대형 태극기의 압수 문제로 대치한 상황에서 순사들의 발포로 4명의 시위 참여자들이 부상을 입었다.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시위 군중과 함께 천의경찰관주재소로 달려가, 돌을 던져 주재소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관을 구타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한 후 해산하였다. 4월 4일의 만세운동 직후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의 만세운동 참여자 검거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25일 서산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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