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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식

朴性植

1883. 5. 5 ~ 1945.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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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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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禮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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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1) 1883년 5월 5일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 삽교면(揷橋面) 목리(沐里, 현 예산군 삽교읍 목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예산군 삽교면에서 전개된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5일 밤 40여 명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야간에 산 위에서 횃불을 올리고,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는 횃불만세운동은 일제 헌병이나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만세운동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가 참여자들을 쉽게 식별할 수 없었고, 어두운 밤에 멀리서도 불꽃이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시위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만세운동의 방식이었다. 다음 날인 4월 6일 저녁, 앞으로의 만세운동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평소 교류가 있었던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에 거주하는 최중삼(崔仲三)을 방문하였다. 최중삼은 이미 4월 1~2일 동안 같은 동리의 민영갑(閔泳甲)·이재만李(載萬) 등과 함께 2차례 만세시위를 전개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중삼의 집에서 홍성군 홍북면(洪北面) 상하리(上下里)에 거주하는 김헌식(金憲植)을 만났다. 이때 김헌식은 검은색의 갓[(黑笠)]을 쓰고 있었다. 고종의 국상 중에 흰색 갓[(白笠)]이 아닌 검은 색 갓을 쓴 것을 보고 격분하였다. 이에 김헌식을 붙잡고 “어찌하여 흑립을 쓰고 있는가”, “어찌하여 만세를 부르지 않는가”, “형편없고 무례한 놈”이라고 비난하는 동시에 쓰고 있는 갓을 벗겨 망가뜨렸다. 그 후 김헌식을 주먹으로 구타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폭행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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