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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칠

朴仙七

1876. 2. 7 ~ 1919.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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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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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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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6년 2월 7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삼가면(三嘉面) 덕진리(德津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선칠(朴善七)·박무호(朴茂浩) 등을 사용하였다. 1919년 합천 지역 만세운동에서 가장 격렬했고 대규모로 진행된 삼가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삼남지역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합천 지역의 만세운동은 고종 국상에 참여한 지역 인사들이 서울의 독립운동을 접하고 독립선언서를 지참하고 내려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18일 합천에서 최초로 거행된 삼가면 읍내 시위는 상백면(上栢面)·백산면(栢山面)·가회면(佳會面)의 주도자들이 연합하여 전개되었는데, 모두 독립선언서를 직접 전달받은 지역이었다. 상백면과 백산면은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던 지역 인사 이원영(李愿永)이 직접 내려와 전달하였다. 가회면의 경우 윤구현(尹圭鉉)이 김상준(金相峻)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와 뜻을 같이하는 지사들과 거사를 모의하였다. 합천 지역 만세운동은 3월 18일 상백·백산·가회 세 개 면이 연합한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군내에서 매일 시위가 이루어졌고, 3월 23일 삼가시장의 만세시위로 절정을 이루었다. 삼가시장 만세시위는 3월 18일 삼가면 읍내 만세시위와 직접적인 연속선상에 있다. 한필동(韓弼東) 등 삼가면 읍내 만세시위 주도자들 중 붙잡히지 않은 인사들은 대규모 군중 동원을 위해 조직적으로 은밀하게 움직였다. 장날인 3월 23일 삼가시장에는 합천군 주민은 물론 인근 의령군(宜寧郡)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1만여 명이나 집결하였다. 시위 주도자들은 우선 일제에 대한 성토대회를 개최하였다. 연단에 선 정방철(鄭邦哲)·김달희(金達熙)·임종봉(林鍾鳳) 등이 일제를 비난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연설을 하였고, 군중은 만세를 부르며 여기에 호응하였다. 대규모 군중이 참여하였지만 평화로웠던 만세시위는 마지막 연설자였던 임종봉에게 일본 헌병이 발포하면서 격렬하게 바뀌었다. 임종봉이 대퇴부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자, 이 광경을 본 군중은 일시에 분노가 폭발하였고, 평화롭던 시위 상황은 격렬한 만세시위로 바뀌었다. 성난 군중의 맨 앞에 서서, 곤봉·낫·호미 등을 든 시위 군중과 함께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적 기관인 읍내 우편소·주재소 등으로 만세를 부르며 나아갔다. 진압을 위해 출동한 일본 군경의 무차별 발포가 있었다. 현장에서 일시에 13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는 참극이 발생하였다. 대규모 만세시위 군중을 선두에서 이끌며 맹렬한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군경의 총탄을 피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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