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동
姜泰東1889. 6. 13 ~ 1946.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의친왕 망명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9년 6월 13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서면(西面) 문평리(文坪里)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이후 대한제국 우정국 주사로 근무하다 1910년 일제강점 이후 사사건건 일제 관헌이 간섭과 탄압을 일삼자 이에 불만을 품고 투쟁을 결심, 모종의 사건에 가담하였다. 1911년 검거되어 황해도 해주형무소에서 22세 때까지 복역하였다고 한다. 출옥 후 고향으로 가지 않고 서울로 올라가 지속해서 활동을 모색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김성근(金聲根)·이춘숙(李春塾)·임봉래(林鳳來) 등과 함께 임시의정원 함경도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19년 7월 상하이 프랑스 조계 장안리 한인 거류민단 사무소에서 열린 임시의정원 제5회 회의에 출석하였다. 동년 8월 대한제국 농상공부 대신 출신으로 3·1운동 직후 국내에서 결성된 조선민족대동단 총재를 맡았다.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가담한 김가진(金嘉鎭)과 노동국총판 안창호(安昌浩)로부터 의친왕 이강(李堈) 등 대한제국 주요 인사의 망명 추진 밀명을 받고 같은 함경도 의원 송세호(宋世浩)와 함께 국내에 밀파되면서 의정원 의원직을 사임하였다. 1919년 10월 임시정부의 임시사료편찬위원회 위원을 지낸 김한(金翰)과 함께 서울로 잠입하였다. 김가진이 정보를 제공한 인맥을 따라 이강의 비(妃, 연안 김씨 김수덕(金修德))의 동생인 김춘기(金春基)를 만나 “상해 가정부는 마침내 독립을 확실한 것이라 하여 나라를 소생시키는 운동 중인데, 이번에 전하를 정부에서 모셔오라고 하여 래경(來京)하였다. 상해 정부는 물론 길림의 동지 등도 전하께서 오시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전하께서 오신다고 하면 인심을 하나로 합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가시도록 주선하라. 전하께 특별히 자격은 없으나 인심을 통일하는 데는 전하를 제외하고는 달리 없다”라고 하면서 협조를 당부하였다. 그의 포섭 대상에는 박영효(朴泳孝)·한규설(韓圭卨)·윤용구(尹用求)·민영달(閔泳達)·이왕[순종, 융희황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탈출에 필요한 수만 원의 자금을 단시일 내에 조달하기는 어려웠다. 이 와중에 비밀 유지에 따른 혼선과 갈등으로 전협(全協) 등에 의해 구금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에 김가진이 상하이로 떠난 뒤 조선민족대동단을 이끌던 전협 등은 의친왕 이강의 심복으로서 『제국신문』 주필과 서우학회 회장을 지낸 조선총독부 촉탁 정운복(鄭雲復)을 속여 그를 통해 이강에게 수만 원의 거금을 대여한다는 허위 계획을 추진하였다. 전협 등에 속은 정운복의 설득으로 자금 조달을 믿게 된 이강은 마침내 상하이 행을 결심하였다. 1919년 11월 9일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고양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 날 수색역에서 기차를 타고 한·중 국경인 안둥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됨으로써 의친왕 이강의 상하이 망명 추진은 실패로 돌아갔다. 1919년 11월 15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적십자회 회원 대표의 일원으로 안창호 등과 함께 대한적십자회 재건 선언문에 서명하였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대한적십자회와 일본적십자회의 합병 합의는 무효라는 것과 두 단체 간에 기존에 존재하던 관계는 해소되었음을 선언한다”라고 하여 세계 적십자사 운동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한다고 선포하였다. 이어 이광수(李光洙)·김철(金澈)·옥성빈(玉成彬)·장건상(張建相)·원세훈(元世勲)·손정도(孫貞道)·김태연(金泰淵)·현순(玄楯)·서병호(徐丙浩)·정인과(鄭仁果)·김보연(金甫淵)·이화숙(李華淑)·김홍서(金弘敍)·고일청(高一淸)·김한(金翰)·오의선(吳義善)·김창세(金昌世)·이신실(李信實)·이기룡(李起龍) 등 19명과 함께 대한적십자회 중앙위원을 맡았다. 중앙위원의 면면을 보아 적십자회는 사실상 임시정부의 산하기구였다. 1921년 12월 초 장건상·정인과·이화숙·고일청·오의선·현순·이춘숙·김한·김보연·이광수·김태연·원세훈·이기룡·서병호 등과 함께 일신상의 사유로 대한적십자회 상의원(常議員) 직을 사임하였다. 1945년 광복 후 서울로 귀환하여 정부 수립 활동을 계속하다 이듬해 2월 사망하여 임시정부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유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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