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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삼

朴炳森

1892. 7. 21 ~ 193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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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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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서흥(瑞興)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서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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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892년 7월 21일 황해도 서흥군(瑞興郡) 내덕면(內德面) 상석리(上石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면서기로 근무하던 중 4월 7일 내덕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서흥군 일대에는 3월 1일 이전부터 천도교와 개신교를 중심으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3월 2일에는 평양의 만세시위 소식을 담은 우편물이 매양면(梅陽面) 면사무소에 도착하였다. 율리면(栗里面) 서달리(徐達里)에 거주하는 김명려(金明麗)는 읍내 천도교구실에서 독립선언서를 받아서 해주면 읍내 천도교구실에 전달하였다. 이에 3월 3일 매양면 덕암리(德岩里)의 개신교인 홍종훈(洪鍾勳)은 덕암리교회에서 교인들과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10일 도면(道面)에서는 능리(陵里) 장날에 개신교 전도사 김성항金(成恒)과 박이도(朴履道)·원용목(元用睦)·원용팔(元用八)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사전에 만세시위 소식을 입수한 일본 헌병이 비상경계를 하였다. 그럼에도 오후 4시 무렵 능리시장에서 김두익(金斗益)·구성빈(具聖彬)·김원보(金元甫)·유병관(劉秉寬)·유기호(劉基鎬)·정학주(鄭學柱) 등이 주도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그 날 읍내에서도 개신교인이 중심이 된 만세시위가 있었다. 3월 18일 서흥면 읍내 장날에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4월 4일에는 내덕면 하석리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날 면서기로 근무하던 중 시위에 참가하여 15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시위대가 전달한 독립선언서를 지니고서 자택으로 귀가하였다가 일본 군경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1심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항소하여 1919년 5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다시 “조선민족으로서 독립선언서를 읽은 것도 죄가 되는가”라고 항변하고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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