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박병규

朴秉圭

1879 ~ 1919. 3. 2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병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삼가면(三嘉面) 용흥리(龍興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박방단(朴邦端)·박방세(朴芳世) 등을 사용하였다. 1919년 합천군 지역 만세운동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던 삼가시장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현장에서 일본 군경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삼가면에서 인근 가회면(佳會面)·상백면(上栢面)·백산면(栢山面) 등이 연합하여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후 합천군 내 각 지역에서 거의 매일같이 만세시위가 전개되어, 장날마다 돌아가면서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양상이었다. 대양면(大陽面)에서는 3월 19일, 20일, 22일에 연이어 만세시위가 있었다. 또한 3월 20일 대병면(大幷面), 21일 초계면(草溪面), 23일 삼가면 삼가시장 만세시위로 이어지며 합천군의 만세운동은 절정을 이루었다. 10,000명이라는 대규모 군중이 모인 삼가시장 만세시위에는 삼가면을 필두로 상백면·백산면 등 합천군 각 지역은 물론 인근 의령군(宜寧郡)의 주민까지 참여하였다. 특히 3,000명에 달하는 백산면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면사무소 앞마당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한 뒤 면사무소 건물을 불태운 이후, 인근의 상백면 주민들과 합세하여 삼가시장으로 이동하였다. 약 4,000명으로 불어난 군중은 가는 길에 합천경찰서와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전신주 2개를 절단하기도 하였다. 합천군 각 지역에서 많은 군중이 모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계엽(李啓燁)·김태현(金台鉉)·윤규현(尹圭鉉) 등 주도자들이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군중 동원에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거사일인 3월 23일 만세시위를 위해 뜻을 같이하는 삼가면민들과 삼가시장 쪽으로 나갔다. 이미 수많은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읍내 객사 바깥채인 정금당(淨襟堂)은 큰 태극기와 함께 집회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정방철(鄭邦哲)·김전의(金典醫)·김달희(金達熙)·임종봉(林鍾鳳) 등 거사를 준비한 주요 인물들이 차례로 정금당 계단 위로 올라가 군중을 향해 일제의 침략과 수탈을 규탄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피력하는 열띤 연설을 하였다. 정금당을 중심으로 모인 수많은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군중집회의 열기가 더해가자 일본 헌병과 경찰이 출동하여 모여 있던 시위대 주위를 포위하였다. 마지막 연설자로 정금당 계단에 오른 임종봉의 연설 때 갑자기 일본 헌병이 그에게 총격을 가했고, 대퇴부에 총탄을 맞은 임종봉이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분노한 시위 군중과 함께 경찰관주재소·우편소 등으로 진격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앞에 서서 성난 군중을 지휘하고 이끌었다. 시위대의 위세에 당황한 일본 헌병과 경찰은 무차별 발포를 감행하였다. 현장에서 13명이 목숨을 잃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이날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이끌다가 일본 군경이 쏜 총탄에 맞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