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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태

閔丙台

1870. 1. 15 ~ 1919.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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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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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홍천(洪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홍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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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홍천군 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0년 1월 15일 강원도 홍천군 동면(東面) 성수리(城壽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홍천군 동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희생되었다. 1919년 3월 말부터 홍천군 동면에서는 민씨 문중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아들인 민준기(閔駿基)가 동생 민병숙(閔丙肅)을 따라 마을 서당 교사 민두식(閔斗植)의 집에서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이들과 태극기를 만들고 속초리(束草里)의 허혁(許爀)을 비롯하여 동면의 삼현리(三峴里)·방량리(方良里)·개운리(開雲里)·월운리(月雲里)·후동리(後洞里)·덕치리(德峙里)·신봉리(新峯里) 등의 주민들에게도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4월 1일 홍천면 신장대리(新場垈里)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서둘러 4월 2일에 동면 면 소재지인 속초리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적극 참여하였다. 4월 2일 새벽부터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속초리로 몰려들었다. 성수리 길목에서는 홍천면으로 통하는 길을 막아 시위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유의하는 한편, 면사무소에 커다란 태극기를 내걸었다. 민병찬(閔丙讚)이 “대한독립, 우리 대한 만세”라고 앞장서 외치는 것에 따라 군중들과 함께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사촌형인 민병선(閔丙善)은 동면 면장으로 만세운동 참여 요구에 따랐고 면서기들도 만세를 외쳤다. 오후가 되자 시위대는 4월 1일 홍천면 시위로 인해 끌려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홍천면 헌병분견소로 행진할 계획이었다. 이때 면장 민병선의 제안으로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모여 홍천면으로 가기로 하고 해산하였다. 4월 3일 동면 내 각 마을 주민들과 함께 홍천면으로 가기 위해 다시 속초리로 모였다. 그러나 이 소식을 사전에 면사무소 직원으로부터 전달받은 홍천군청에서 홍천헌병분견소의 헌병 2명과 보병 4명을 출동시켰다. 시위 주도자들과 일제 헌병대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총기로 위협하는 상등병 이케다(池田)의 총을 뺏으려던 민병숙이 옆에 있던 일본군의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동생의 죽음에 격분하여 달려들었으나 역시 일본군의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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