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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찬

閔丙讚

1885. 11. 24 ~ 1926.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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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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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홍천(洪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홍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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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홍천군 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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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2) 1885년 11월 24일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동면(東面) 성수리(城壽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민병찬(閔丙璨)·민찬옥(閔璨玉)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3일 홍천군 동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홍천군 동면 성수리는 민씨(閔氏) 집성촌으로,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3월 말부터 민씨 문중이 주도가 되어 만세시위가 준비되었다. 민병숙(閔丙肅)은 조카인 민준기(閔駿基)와 같이 마을 서당 교사 민두식(閔斗植)의 집에서 태극기를 만들며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민병숙은 3월 3일에 있었던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여 서울의 만세운동을 목격한 바 있었다. 동면 내 속초리(束草里)·삼현리(三峴里)·방량리(方良里)·개운리(開雲里)·월운리(月雲里)·후동리(後洞里)·덕치리(德峙里)·신봉리(新峯里) 등에 연락을 취하여 운동 참가를 독려하였다. 그러던 4월 1일 홍천면 신장대리(新場垈里) 장터에서 홍천군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 소식에 자극받아 민씨 문중에서는 4월 2일 동면 면 소재지인 속초리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이에 적극 참여하였다. 4월 2일 새벽부터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속초리로 몰려들었다. 이때 홍천면으로 통하는 성수리 길목을 막아 시위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였다. 동면 면장은 민씨 가문의 민병선(閔丙善)으로 만세운동 참가 요구를 따랐다. 그리고 면사무소에는 커다란 태극기를 내걸었다. 이때 제일 먼저 “대한독립, 우리 대한 만세”를 앞장서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는 오후가 되자 4월 1일에 일어난 홍천면 시위로 붙잡혀간 사람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홍천면 헌병분견소로 향할 계획이었다. 이때 면장 민병선이 이미 오후이니 내일 아침에 다시 모이자고 회유하였다. 그 제안에 따라 저녁 무렵 해산하였다. 4월 3일 날이 밝자 홍천면으로 가기 위해 동면 내 각 마을 주민들과 함께 다시 속초리로 모여들었다. 시위대가 다시 모여 홍천면으로 행진할 것이라는 소식을 사전에 입수한 홍천헌병분견소에서 헌병 2명과 보병 4명을 파견하였다. 일제 헌병의 무력 진압으로 민병숙과 민병태가 현장에서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시위대는 격렬하게 저항하였으나 결국 해산하였다. 일제 군경의 검거를 피해 이날 밤 홍천군 내촌면(內村面) 도관리(道寬里)로 피신하여 4월 3일 내촌면 물걸리(物傑里) 시위를 주도한 김덕원(金德元)과 함께 4월 11일 산상 횃불시위를 일으켰다. 김덕원의 사촌동생 집에 피신하여 있다가 붙잡혀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방화, 기물 파손 등으로 춘천형무소에서 7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풀려났다. 1920년 8월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민필호(閔弼鎬)와 함께 지냈다. 1926년 아픈 몸을 이끌고 귀국하였으나 6월 28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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