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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春燮

春燮

1878. 1. 2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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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盧春燮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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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경성(鏡城)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경성기독청년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나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78년 1월 22일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오촌면(梧村面) 승암리(勝岩里)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료의 한계로 알 수 없으나, 1907년 5월 경성보통학교(鏡城普通學校)에 재학 중 국채보상의연금 50전을 납부한 기록이 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함경북도 연통제 조직에서 연락 업무를 담당하였다. 연통제는 감독부(도)-총감부(군)-사감부(면)로 이어지는 체계를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당시 경성교회의 전도사로 경성군(鏡城郡) 지역의 고문을 맡았다. 또 회령군(會寧郡)에 거주하는 박관훈(朴寬勳)의 집에서 박원혁(朴元赫)을 만나 임시정부의 서류를 전달받고 이를 경성의 이상호(李相鎬)·전재일(全在一)에게 전달하였으며, 경성의 연락기관 설치와 운동자금 모집에도 참여하였다. 1919년 6월 ‘나남(羅南) 사건’을 기점으로 연통부 주요 간부들이 붙잡히게 되면서 함경북도 지역 연통제 조직이 노출되었다. 이에 김인서(金麟瑞)·박원혁 등 중심 인물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곧 붙잡히게 되었다. 예심 과정에서 무관함을 주장하다가 입장을 바꾸어 연통제 관련 서류를 “너무 기뻐서 전달하였다”, “조선 독립을 희망하다 뿐이겠는가” 라고 말하며 의연한 태도로 재판에 임하였다. 1920년 8월 4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0년 11월 2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다시 2년을 받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에는 종교활동에 종사하며 경성기독청년회에서 강연을 맡기도 하였다. 함북 부령군(富寧郡)에서 장로교회에 관여하였으나, 1931년 10월 교회 운영이 어려워 포교폐지계(布敎廢止屆)를 제출한 기록이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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