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홍
朴文泓1887. 4. 8 ~ 1957. 12.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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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87년 4월 8일 경상북도 경주군 부내면(府內面) 노서동(路西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경주 노동리교회(路東里敎會, 현 경주제일교회)의 집사였다. 1919년 3월 13일 경주 읍내 장날을 이용한 만세시위 계획을 주도하였다. 박래영(朴來英) 목사를 비롯한 교회 신도 김학봉(金學鳳), 조기철(曺基哲) 등과 파리강화회의에서 의결된 민족자결에 따라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약소국이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또 신문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독립의 시기가 왔다고 인식하였다. 이 시기 경산군(慶山郡) 고산면(孤山面) 사월리(沙月里)에 사는 김기원(金基源) 목사가 경주 노동리교회를 방문하여 대구 지역의 만세시위에 대해 자세히 전한 후 경주에서도 거사를 일으킬 것을 권유하였다. 3월 12일 노동리교회당에서 박래영 목사를 비롯한 교회 신도들과 회합하여, 3월 13일의 경주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를 결정한 후 자신의 집에서 군중에게 나눠줄 태극기 약 360개를 제작하였다. 최수창(崔壽昌)·이승태(李承泰)·김학봉·조기철도 태극기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때 태극기 배부와 운동 시각 및 장소 공지 등 다음 날 있을 거사의 진행 방법을 논의하였다. 다음 날 새벽부터 김천근(金千根)·전성필(全晟弼)·김성길(金成吉)·최성렬(崔成烈) 등을 각 마을로 보내 태극기를 배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거사 직전 경주경찰서의 경계망에 포착되어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고 읍내 장터의 만세시위도 불발되었다. 1919년 4월 15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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