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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호

朴文昊

미상 ~ 1919.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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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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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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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홍원(洪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홍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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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출신이다. 1919년 3월 16일 홍원군 주익면(州翼面)(현 홍원읍)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주익면 만세시위는 천도교 홍원교구의 강인택(姜仁澤)이 천도교 중앙총부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으면서 시작되었다. 3월 7일 홍원교구 강인택·김세경(金世暻)·김한욱(金漢郁) 등 천도교 지도자들이 회합하였다. 이들은 주익면 소재지인 성동리(城東里)의 장날인 3월 16일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구역을 나누어 천도교인들에게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연락하기로 하는 한편, 시위에 사용할 독립선언서 1.000장을 홍원교구에 있던 등사판을 이용하여 제작하고, 조선독립 깃발도 만들었다. 1919년 3월 16일 주익면 성동리 장터에는 장날을 맞아 수백 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는데, 이날 장터로 나가 시위에 참가하였다. 오전 11시가 되자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공성상회(共誠商會) 앞에서 집회가 전개되었다. 궤짝으로 만든 단 위에 강인택과 김상봉(金相鳳)이 올라서서 만세시위에 대한 연설을 하였다.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천도교인들은 스크럼을 짜고 연단을 둘러쌌다. 연설이 끝나자 시위를 주도한 강인택 등 천도교인들을 선두로 700여 명의 군중들이 일제 식민 지배의 상징적 기관인 홍원군청 쪽으로 행진하였다. 이때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소리높이 부르면서 홍원군청 앞까지 행진하였다. 홍원군청 앞에 다다른 시위대는 더욱 큰 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시위 열기도 고조되었다. 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이 진압을 위해 출동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며 해산을 시도하였다. 아울러 시위 주도자와 적극 참가자를 색출하기 위해 붉은색 잉크를 뿌리는 방법으로 체포 작전도 전개하였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일제 경찰의 고문을 동반한 혹독한 조사를 받고 함흥검사국으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모진 고문으로 인해 1919년 3월 23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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