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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朴敬善

1875. 1. 1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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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경선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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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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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공립협회 멕시코 메리다지방회
  • ·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메리다지방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75년 1월 14일 서울 계동(桂洞)에서 태어났다. 자료의 한계로 가족 관계와 성장 과정 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미국에서 공립협회와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하였다. 1905년 4월, ‘노예 이민’인 줄 모른채 1,033명의 한인들과 함께 멕시코로 건너가 4년 간 에네켄농장에서 혹사당하였다. 4년의 계약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미주 국민회(國民會)의 도움을 받아 1909년 5월에 조직된 멕시코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의 창립회원이 되었고, 1914년에는 평의원을 맡았다.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으나 메리다 지방에서 거주하다 1920~21년 탐피코 지방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1922년 탐피코지방회 부회장을 시작으로 1923년부터 1925년까지 총무를 역임하였다. 1926년에는 부회장을 맡았고, 1927년에는 회장으로 탐피코지방회를 이끌면서 3·1기념식을 개최하였다. 이후 1928년 탐피코지방회 대의원을 맡았고, 1929년에는 서기 겸 학무로 2월 1일 국민회 창립기념식에서 국민회 헌장을 낭독하였다. 1929년 7월, 탐피코에서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멕시코시티지방회(墨京市地方會)에 가입하였다. 수차례 이주하면서도 국민회 활동을 통해 한인들의 단결과 독립운동 지원 활동을 이어갔다. 1930년에는 멕시코시티지방회 총무, 1932년 총무 겸 재무, 선전부 수전위원(收錢委員) 등을 맡았다. 동시에 1932년 3·1기념식에서 예식위원을 지냈다. 1933년에는 탐피코에 이어서 멕시코시티 지방회에서도 부회장을 맡았고, 1934년에는 회장에 선임되었다. 1935년에도 재차 지방회장에 선임되었으나, 3월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귀국 직전 1월 14일 160명의 동포와 외국인을 초대한 회갑연을 가진 바 있다. 1919년부터 1935년 귀국할 때까지 임시정부 후원과 독립운동을 지원과 국내 동포들의 구제를 위해 총 267원의 자금을 후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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