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인화
毛仁華1897 ~ 1921. 7.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의군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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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97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회령군 벽성면(碧城面) 대덕동(大德洞) 자비석동(字碑石洞)에 거주하며 숯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1920년 8월 24일 한국 독립을 목적으로 만주에서 조직된 무장독립단체인 의군단(義軍團)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총재 이범윤(李範允)과 총사령관 김현규(金鉉圭)가 지도한 의군단은 산포대(山砲隊) 출신 의병들이 주축을 이루었기 때문에 의군산포대라고도 불렸다. 의군단 단원 최운학(崔雲鶴)·차정극(車正極)·이인준(李仁俊)과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일본 밀정 처단 계획을 논의한 후,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사대사(四對社) 서동동(西東洞)에서 밀정 허수여(許守汝)와 이국보(李國輔)를 납치하였다. 1920년 10월 1일 오후 6시경 이들을 서동동에 있는 쌍봉산(雙奉山) 정상으로 데려가 곤봉으로 처단하고, 현금 333원, 당목(唐木) 1필, 광목(廣木) 1필, 흑라사(黑羅紗) 1필, 옥양목(玉洋木) 8척 등을 군자금으로 획득하였다. 1920년 10월말 의군단 모연대원(募捐隊員) 김사극(金士極)·고학권(高學權)·석태준(石泰俊)·허영철(許永哲)과 함께 국내로 들어와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함북 종성군 행영(行營) 부근 주민들에게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기부를 권유하여, 현금 100원과 7,000원 상당의 계약 증서를 받는 성과를 얻었다. 중국 간도와 함북 회령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군자금 모금 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지자 이를 막기 위해 독립군 체포에 혈안이 되어 있던 회령경찰서 소속 일제 경찰에 의해 1921년 2월 무렵 이인준·최운학·김진룡(金眞龍)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 살인 등으로 1921년 2월 24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사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그 해 4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살인, 강도치사로 사형이 재차 확정되었다. 이에 자신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와 인도(人道)에 기초한 행의로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제1심과 제2심의 유죄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상고하였다. 1921년 5월 2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1년 7월 9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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