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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일

朴三一

1892. 4. 1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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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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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자성(慈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자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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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2년 4월 16일 평안북도 자성군(慈城郡) 여연면(閭延面) 중상동(中上洞)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으로 박윤무(朴允茂)를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잡화상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자성군의 사립 신성학교 교사 이재명李(才明) 등과 자성군 여연면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거족적인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이재명이 여연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자고 제안하자 즉각 찬성하고 함께 운동을 준비하였다. 또한 희명소학교(熙明小學校)의 전(前) 교원 김인형金(仁亨),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측량기수 이기용李(基容), 신성학교 졸업생 김종하金(宗河)·김종선(金宗先) 형제도 계획에 동참하였다. 이재명은 3월 11일 평양 대성학교(大成學校) 졸업생이자 당시 만주로 이주하여 약종상(藥種商)을 하던 정단(鄭丹)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얻어 김종하 형제에게 태극기와 함께 등사하도록 하였다. 거사에 참여하기로 한 인물들은 각자 학교와 교회에 집회와 시위 계획을 알리기로 하였다. 만세시위는 3월 23일 일요일로 예정되었다. 예배를 위해 교회에 모인 기독교인을 쉽게 동원하기 위함이었다. 3월 23일이 되자, 김종하가 자전거 뒤에 대형 태극기를 달고 시가지를 한 바퀴 돌며 만세시위에 대한 주민들의 사기를 돋웠다. 예정된 시각인 오후 1시가 되었을 때는 이미 중강(中江) 다리 밑에 많은 기독교인과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이재명의 지시로 김종선이 시위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한 후,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가두 시위에 나섰다. 이때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는 시위대를 선두에서 지휘하였다. 시위대는 중상동을 거쳐 헌병대 앞을 지나 건하동(乾下洞)을 돌아왔다. 이것을 본 시내 주민들이 철시를 하고 시위에 합류하였다. 시위대는 일본인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중평동의 신시가지로 들어가지 않고 구 시가지만을 돌았다. 세 바퀴째 돌아올 때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강제로 해산 당하였다. 이때 현장에서 동료 13명과 함께 만세시위 주도자로 붙잡혔다. 일자 미상일에 제1심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바로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이에 다시 “삼천리강토에 거주하고 있는 2천만 민족의 한 사람으로 기뻐서 동정을 표한 것 뿐”이라고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7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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