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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參容

朴容

1897. 1. 15 ~ 195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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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朴參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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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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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7년 1월 15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운곡면(雲谷面) 위라리(位羅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운곡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운곡면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6일과 8일의 두 차례에 걸친 횃불만세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는 청양 최초의 만세운동 시도였던 4월 3일의 계획이 일본 경찰에 사전 발각되어 좌절된 후 새롭게 등장한 만세운동 방식이었다. 야간에 산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만세운동은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출동하기까지 만세운동의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어두운 야간에 전개되어 참여자를 쉽게 식별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또한 야간에 멀리서도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시위의 효과를 높이는 것뿐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만세운동을 확산시키기에도 용이하였다. 4월 6일 밤 운곡면 소재지인 신대리(新垈里)를 중심으로 모곡리(矛谷里)·영양리(永陽里)·효제리(孝悌里)·후덕리(厚德里)·위라리 등 운곡면의 각 마을 간 연락을 통해 주민 600여 명이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박봉운(朴奉云) 등 위라리 주민들과 함께 마을의 산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일본 헌병은 야간에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는 산 위로는 감히 올라오지 못하고 만세시위대를 향해 위협 사격을 가하여 시위대를 해산시키고자 하였다. 4월 8일 밤에는 10시부터 운곡면과 비봉면(飛鳳面)의 주민 600여 명이 연합하여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6일 밤과 마찬가지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주변 산 위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후 일본 헌병의 대대적인 검거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21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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