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봉
朴三鳳1892. 12. 24 ~ 1975. 3.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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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2년 12월 24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진평동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인동교회(仁同敎會) 목사 이상백(李相栢)을 찾아오면서 계획되었다. 이영식은 독립선언서 20매를 이상백에게 보여주면서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하였다. 이에 임용섭林龍(燮)·이영래李(榮來)·박명언(朴明彦)·권영해(權永海)·임점석林(占錫) 등과 함께 3월 12일을 거사일로 정하여 태극기를 제작하고, 동네에 붙일 독립선언서를 필사하는 등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3월 12일 오후 독립선언서를 마을 곳곳에 붙이는 한편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저녁에 있을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설득하였다. 같은 날 저녁 8시 인동면 진평동 뒷산 기슭에 모인 300여 명의 주민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 소리에 놀란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참여한 주민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주동자를 비롯한 참가자 일부를 붙잡았다. 그러나 3월 12일 이후로도 만세시위는 그치지 않았다. 3월 13일 오후 4시에 15~16명, 같은 날 오후 9시에 약 30여 명, 3월 14일 오전 10시에는 약 40여 명이 12일과 같은 장소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특히 계성학교 학생 김도길(金道吉)은 고향인 인동면 진평동에서 추가적인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김도길은 같은 동네에 사는 박봉술(朴鳳述)·김성윤(金性允)과 의논하여, 3월 14일 저녁에 마을을 돌아다니며 독립만세를 부를 사람을 모았다. 같은 날 밤 9시에 약 200여 명을 이끌고 뒷산에 올라 다시금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때 만세시위에 참석하여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붙잡힌 후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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