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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하

明昌夏

187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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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명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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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삭주(朔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삭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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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평안북도 삭주군(朔州面) 구곡면(九曲面) 인풍동(仁豊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명창하(明昌河)가 있다. 평북 창성군(昌城郡)에서 중국 만주로 이주하여 1920년부터 남만주 펑톈성(奉天省)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를 기반으로 결성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도총재 박장호(朴長浩), 부총재 백삼규(白三圭), 총단장 조맹선(趙孟善), 부단장 최영호(崔永浩)·김원섭(金元燮) 등이 지도부를 구성하였고, 국내외에 100여개의 지단·지부를 두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환런(桓仁)·창바이(長白)·푸쑹(撫松)·린장(臨江)·관뎬(寬甸)·지안(輯安) 등에 설치된 국외 지단 10여개 가운데 관뎬현(寬甸縣) 지역에서 지단장(支團長)으로 활약하였다. 지단장으로서 독립단원과 청년단원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세력을 점차 확대해 나가고자 하였으며, 군자금을 모집하고 총기와 탄약을 구입하는 등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준비 작업을 계속하였다. 1921년 47세의 나이로 부하 약 20명과 함께 평북 삭주군으로 잠입하여 독립단의 국내 지부와 연락을 취하는 등 국내외 연락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한편 콴뎬현 삼분자(三岔子)에 거주하던 1920년부터 1921년까지 일제로부터 가택 수색과 폭행 등의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1920년 4월경 일제 헌병과 보조원들이 집으로 찾아와 가택 수색을 하며 의복과 약 400원 가치의 물품을 빼앗아 갔고, 다시 6월경에 찾아와 남아있는 가구(家具)를 모두 불태웠다. 11월경에는 순사 7~8명이 와서 그의 아내를 구타해 중상을 입혔다. 1921년 1월에는 의주(義州) 청성진(淸城鎭)에 주둔하던 일본군 7~8명이 중국군과 함께 와서 집을 모두 불태워 한겨울에 길거리로 내몰리기까지 하였다. 1922년 2월 대한독립단이 대한통군부 및 대한통의부로 변화하는 과정에 동참하였으며, 이후 환런현(桓仁縣)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백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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