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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덕

馬正德

188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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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마정덕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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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무산(茂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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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야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2) 함경북도 무산군(茂山郡) 동하면(東下面) 풍산동(豊山洞) 출신이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188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마문관(馬文官)·마장명(馬長命) 등을 사용하였다. 만주로 건너간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20년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에서 야단(野團)에 가입하여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거주지는 화룡현 이도구(二道溝) 선화사(善化社) 휘풍동((揮風洞), 휘봉동(揮鳳洞))이다. 야단은 1919년 만세운동 직후 동불사(銅佛寺)에 본부를 두고 설립되었고, 청산리대첩 이후 광복단(光復團)·의군부(義軍府)·혈성단(血誠團) 등 독립운동 단체들과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으로 통합되었다. 임대성(林大聖)을 회장으로 남홍윤(南鴻允)을 단장으로 조직된 야단에서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5월 일본 관헌의 밀정이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고, 적발하면 처단하는 임무를 맡은 야단 경호원(警護員) 김두일(金斗一), 경사원(警査員) 장봉학(張鳳鶴)과 함께 허룽현 선화사 휘풍동에서 우연히 함경남도 무산군(茂山郡) 읍내에서 사진관을 경영하던 이남율(李南律) 이남진(李南津)을 만났다. 김두일은 신문(訊問)을 통해 그를 정탐꾼으로 판정하고 처단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남율의 뒤를 쫓아가 기우제동(祈雨祭洞) 언덕길에서 처단하였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1923년 9월 28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장봉학과 함께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살인죄로 무기징역, 김두일은 사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를 제기하여 1924년 1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장봉학과 함께 징역 20년, 김두일은 무기징역을 다시 받고 옥고를 치렀다. 약 9년 2개월 동안 수감되어 고초를 겪다가, 1932년 5월 3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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