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胤善
胤善188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27결사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이완용 암살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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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9년 출생했으며, 1919년경 서울 종로구 충신동(忠信洞)에 거주했으나 출생지인지는 확실치 않다. 1919년 2월경 27결사대의 대원이 되었다. 27결사대는 평안남도 성천군(成川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탁(李鐸)이 서간도에서 결성한 단체였다. 이들은 고종의 인산일에 매국노들을 처단키로 결정하고 결사대를 4개 조로 나누어 1개 조는 펑톈(奉天, 현 선양(瀋陽))으로 가서 무기를 서울로 옮기고, 3개조는 1919년 2월 24일부터 서울로 출발하였다. 약속일인 2월 26일 서울에 도착한 행동조는 숙소를 정한 다음 서울의 지리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을 물색하여, 그를 포함해 이우영(李宇榮)·이기원(李基源) 등을 합류시켰다. 이들은 국장 행렬이 지날 지역을 답사하며 3월 3일을 기다렸다. 그런데 무기 운반조가 3월 15일에야 도착함에 따라 거사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결사대는 계속 서울에 머물며 다음 기회를 엿보기로 결정하였다. 대원의 일부는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고, 일부는 국내 동포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수행하기로 하였다. 군자금 모집조에 속해 3월 31일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손창준(孫昌俊)·차병제(車秉濟) 등과 한 조가 되었다. 4월 중순 밤 무교동에 거주하던 부호 박홍일(朴泓鎰)로부터 500원의 거금을 모금하였다. 다른 조 대원들도 4월 말까지 인사동·돈의동 등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던 중 5월 5일 결사대원 손창준·이우영·안경식(安景植)·박기한(朴基寒)·박진태(朴鎭台)·차병제 등이 종로경찰서 경찰대에 붙잡히면서 거사계획이 무산되었는데, 이때 신속히 대피하여 붙잡히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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