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潘英璣1903. 12. 25 ~ 1977. 4.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연초청년회
- · 조선공산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관련 사건
- · 조선공산당 재건위원회 사건
- · 중국공산당 조선국내공작위원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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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8) 1903년 12월 25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사등면(沙等面) 사곡리(沙谷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반청(潘淸)이다. 본적은 통영군 연초면(延草面) 이목리(梨木里)이고, 통영군 이운면(二運面) 장승포리(長承浦里)에 거주하였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에는 조선일보 거제지국 기자로 활동하였다. 이발업에도 종사하였다. 거제 지역 사회운동에 활발히 참여하였는데, 이운청년회(二運靑年會)와 쌍벽을 이루는 연초청년회(延草靑年會)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3월 15일 개최된 총회에 참여해 집행위원이 되었고, 청년회를 통해 수해구제금 모집, 지역 내 소작쟁의 지원, 연초소년단(延草少年團) 조직, 여성운동·형평운동의 지원, 친일단체 상애회(相愛會) 성토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1925년 12월 22일 연초오월단(延草五月團) 소속으로 “대중 해방전선에 중요 요소인 체력 훈련을 목표로 하는” 거제도체육단(巨濟島體育團) 발기회에 동참하였다. 1927년 이후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가담하였는데, 3월 조선공산당 경남위원회의 거제도 야체이카 회원으로 참가하였다. 거제도 야체이카는 책임자가 김응수(金應水)였고, 지한명(池漢明)·윤봉근(尹奉根) 등이 함께하였다. 이들은 거제지역 청년들에게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고 진주 지역으로까지 조직을 확장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1927년 10월 26일 열린 신흥청년회(新興靑年會) 정기대회에서 조직명을 거제청년동맹(巨濟靑年同盟)으로 변경하는 데 참여하고,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신간회(新幹會) 통영지회 간사로도 활동하였다. 1928년 8월 28일 지한명·윤봉근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경기도 경찰부에 붙잡혔다가 풀려났다. 그 해 11월 9일 재차 거제경찰서에 붙잡혔다가 11월 12일 풀려났다. 1930년에는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참여하여, 통영군 공산청년회(共産靑年會) 야체이카원으로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는 1929년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결성되어 적색노동조합과 적색농민조합을 조직하고자 하였다. 1931년 3월에는 이를 해소하고 중국공산당(中國共産黨) 산하 조선국내공작위원회(朝鮮國內工作委員會)에서 활동할 것을 결의하였다. 1931년 5월 용산경찰서에 의해 ‘조선국내공작위원회 사건’ 관계자의 체포가 시작되었고, 이 무렵 송치되어 6월 경성지방법원 예심에 회부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 약 2년간 옥고를 치렀고 1933년 4월 28일 예심 결정에서 지한명 등과 면소되어 당일 밤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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