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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옥

朴文玉

1862. 11. 2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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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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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갑산(甲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갑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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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62년 11월 25일 함경남도 갑산군(甲山郡) 진동면(鎭東面) 은사리(隱士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58세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천도교인이다. 갑산군 장평면(長平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함경남도의 만세운동은 천도교 교인들을 중심으로 교세가 강성한 단천군(端川郡)에서 먼저 계획되었다. 1919년 3월 3일 독립선언서가 전달된 이래 단천군의 전교사 서봉화(徐鳳和), 천도교도 최봉천(崔鳳天), 갑산군 전교사 김명수(金明洙) 등이 3월 15일을 기하여 도내 천도교 각 교구에서 교도를 집합하고, 군 단위 대규모 만세시위를 조직하였는데, 이때 갑산군 만세시위 계획을 주도하였다. 거사일인 1919년 3월 15일, 정수웅(鄭秀雄)·김용균(金龍均) 등과 함께 장평면 서부리(西部里) 천도교구실에 회합하여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오후 2시경 갑산군 회인면(會麟面) 후지리(厚地里) 천도교 교구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시위를 주도한 후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는데, 그 해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동일하게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다시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제1심과 제2심의 판결이 복종할 수 없는 위법한 것이라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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