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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영

朴文瑛

1871. 12. 17 ~ 194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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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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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梁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양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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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71년 12월 17일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동면(東面) 법기리(法基里)에서 태어났다. 장성해서는 경상북도 대구부(大丘府) 신정(新町)(현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일대)에 거주하면서 잡화상(雜貨商)을 경영하는 한편, 대구 서문교회(西門敎會)의 장로로 활동하였다. 1919년 대구 서문시장(西門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대구에서는 3월 초 서울의 이굉상李(宏祥)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장을 전달받은 목사 이만집(李萬集)을 중심으로 시위가 준비되었다. 이만집은 교회를 중심으로 다수의 동지를 규합하여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장날을 기해 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여기에는 기독교인을 비롯해 계성학교(啓聖學校, 현 계성고등학교), 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等普通學校, 현 경북고등학교), 신명여학교(信明)女(學校, 현 신명고등학교) 등의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기로 하였다. 3월 8일 오후 3시경 서문시장에는 700~800명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날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만집이 독립의 당위성을 연설한 후 만세를 선창하자 이에 호응하여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태극기를 흔들며 본정(本町)과 경정(京町)을 거쳐 동성정(東城町)까지 행진하였는데, 대구경찰서와 대구헌병분대에서 출동해 무력으로 진압에 나서면서 동성정 근처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동일한 형량을 선고받았다. 이에 다시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당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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