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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출

朴命出

1893. 6. 15 ~ 196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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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명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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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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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3년 6월 15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3월 12일부터 삼일 간 전개된 칠곡군 인동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서울에서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퍼진 1919년 만세운동은 3월 7일 대구부(大邱府) 신정(新町)의 계성학교(啓聖學校, 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를 가져오면서 인동면 진평동에도 알려졌다. 이영식은 인동교회(仁同敎會) 목사 이상백(李相栢)에게 전국 각지의 만세운동을 알리면서 칠곡에서도 만세운동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평소 국권 회복을 희망하던 이상백은 임용섭林龍(燮)·이영래李(榮來)·박명언(朴明彦)·권영해(權永海)·임점석林(占錫) 등과 함께 인동면 진평동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거사일을 3월 12일로 결정하였다.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서를 필사하는 등의 준비를 마친 후, 3월 12일 저녁 8시에 인동면 진평동 뒷산 기슭에 200여 명의 주민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만세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때 주민들과 함께 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소리를 듣고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시위대는 해산되고 주도자가 체포되었지만, 이때 검거를 피했다. 이튿날인 3월 13일에도 두 차례, 3월 14일 오전에도 한차례 같은 장소에서 20~40여 명의 규모로 만세 운동이 이루어졌다. 이영식과 같은 계성학교 학생 김도길(金道吉)은 마을 사람 박봉술(朴鳳述)·김성윤(金性允)과 함께 다시 한번 큰 규모의 만세 운동을 계획하여 3월 14일 밤 9시에 거사하였다. 거사 장소인 인동면 진평동 뒷산에는 또다시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12일에 이어 참석하였다. 그러나 다시 출동한 일본 경찰들이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을 체포하였는데, 이때 붙잡혔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4일 대구복심법원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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