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박만수

朴萬守

1897. 2. 2 ~ 1974. 12. 17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만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밀양(密陽)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밀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897년 2월 2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밀양면(密陽面) 내이동(內二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밀양군 읍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밀양군 읍내 만세시위는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윤세주(尹世胄)·윤치형(尹致衡) 등이 읍내 학생과 기독교인을 규합하면서 준비되었다. 1919년 3월 11일과 12일 이틀간 내이동 정동찬(丁銅燦) 집에서 윤세주를 중심으로 시위를 준비하는 모임이 열렸는데, 이날 이장수李(章守)·김소지(金小池)·박소종(朴小宗) 등과 함께 참석해 만세시위에 동참하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밀양군 읍내 장날인 3월 13일로 정하였다. 거사일인 1919년 3월 13일 오후 1시경, 동지들과 함께 밀양면 내일동 김병환金(鉼煥) 상점 인근에 모였는데, 윤치형으로부터 ‘조선독립만세’라 쓴 대형 깃발을 전해 받으며 만세시위의 선두에 설 것을 요청받았다.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깃발을 들고 선두에 서서 앞으로 나갔다. 거사 계획 때부터 함께 한 동지들 중 김소지가 나팔을 불며 그 뒤에 섰고, 박소종 등이 태극기를 흔들며 따랐다. 시위대가 시장 인근 밀양공립보통학교(密陽公立普通學校, 현 밀양초등학교) 도로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수천 명의 군중 앞에 선 윤세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선창하자, 주민들과 함께 이에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대형 깃발을 들고 시위대의 선두에서 읍내 시장 곳곳을 행진하자, 군중들도 만세를 부르며 뒤를 따랐다. 읍내 장터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밀양헌병분견소 헌병들이 진압을 위해 출동하였다. 시위대 진압을 위해 부산에서 급파된 헌병과 일본군 수비대까지 출동하였다. 일제 군경은 무자비한 폭력과 총검을 휘두르며 시위대 진압 작전에 나섰고, 결국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만세시위 주도자로 일제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