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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성

朴斗成

189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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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두성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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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金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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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명지면(鳴旨面) 신전리(新田里,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21세인 것으로 보아 1899년생으로 추정된다. 당시 잡화상(雜貨商)을 경영하였으며, 김해군 명지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김해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30일 읍내 시위를 시작으로 인근 장유면(長有面)과 하계면(下界面)·생림면(生林面)·명지면 등으로 확대되어 나갔는데, 명지면에서는 4월 10일과 11일 이틀에 걸쳐 시위가 전개되었다. 1919년 4월 10일 중리(中里) 명호시장(鳴湖市場)에서는 장날을 기해 5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를 외쳤다. 이날 양왕석(梁旺錫)·이규회(李圭恢)·지봉구(池鳳九) 등과 함께 시위에 참여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튿날인 4월 11일 밤에는 명지면 진목리(眞木里)에서 양왕석·이규회 등 3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 이때 출동한 일본군 헌병들이 무력을 행사하며 제지하자 시위를 해산하였다. 이후 두 차례의 시위에 참여한 일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에 원심 검사가 항소를 제기했으나, 그 해 6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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