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광
朴惠光1920. 11. 26 ~ 2001. 7.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결심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결심대의 대왕산죽창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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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0년 11월 26일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남산면(南山面) 사월리(沙月里)에서 아버지 박종현과 어머니 윤덕향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일제 말기에는 창씨개명 강요로 신정혜광(新井惠光)으로 고쳤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항일운동단체 결심대(決心隊)를 조직하였다가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1940년대 일제가 강제로 징병·징용제를 실시한 탓에 1944년 6월 청년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청년들을 남산면 사월리 출신 박재달(朴在達) 등과 함께 규합하여 징병·징용제도를 결사 반대하며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박재달 등과 함께 같은 해 7월 5일부터 7월 15일까지 모두 3차례에 걸친 회합에 참가하여 저항 계획을 논의하였다. 7월 15일 사월리 원당보에서 열린 3차 회합에 참석하였다. 이어 같은 해 7월 26일 새벽에 남산면 사월리·산양리(山陽里)·송내리(松內里)·남곡리(藍谷里)에서 모인 26명의 청년들과 함께 대왕산(大旺山)으로 올라갔다. 박재달 등 정보연락대 3인은 마을에 남았다. 대왕산에 오른 26명의 청년들과 함께 ‘결심대(決心隊)’를 조직하고, 3개 소대·1개 특공대·1개 정보연락대로 편제하였다. 이때 2소대 소대장 배상연(裵相淵) 휘하에 편성되어 투쟁하였다. 7월 27일부터 남산면주재소 소속 일본 경찰들이 계속 회유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이어 8월 1일부터 일제 경찰이 공격하자 백병전에 대비해 죽창으로 무장하고 돌을 던지며 대응하였다. 그리고 용산(龍山)으로 이동한 뒤 8월 5일부터 시작된 일제 경찰의 공격에 투석전으로 항거하였다. 모두 3차례에 걸친 충돌 과정에서 결심대는 남산면주재소 공격, 주재소 주임 살해, 식량 공급과 진지 이동 등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항쟁 의지를 지속적으로 다져 나갔다. 식량이 떨어지자 8월 9일 대원들과 함께 하산하여 은신하였으나 8월 13일까지 모든 대원들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남산면사무소에서 이틀 동안 조사를 받고 경산경찰서로 이송되어 이른바 보안법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송치되었다. 1944년 10월 14일 대구형무소로 다시 이송되어 옥고를 겪다가 1945년 6월 23일 박재달 등과 함께 병으로 보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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