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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풍직

朴豊稷

1912 ~ 1932.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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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풍직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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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홍원(洪原)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홍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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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경성RS협의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경성RS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보청면(甫靑面) 신평리(新坪里) 출신이다. 1932년 2월 26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21세로, 1912년생으로 추정된다. 1928년 서울 사립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 이하 중앙고보)에 입학한 이후 동맹휴교를 주도하였고 1931년 경성RS협의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9년 봄 중앙고보 2학년에 재학 중, 다른 신문들 속에 숨겨 넣은 일본공산당(日本共産黨) 기관지 『무산자신문(無産者新聞)』을 우송받은 일로 인해, 한때 ‘불온간행물(不穩刊行物) 밀송(密送)’ 관련으로 조사 받았다. 같은 해 11월 20일 이원갑(李源甲)을 비롯한 동기생들과 함께 교원(敎員)배척 등 각종 요구사항을 내걸고 동맹휴교를 전개하였다. 진정서(陳情書)를 학교당국에 제출하고 1929년 12월 9일 시위운동을 계획했으며, 일제 관헌의 스파이 혐의를 받던 ‘김보은(金補殷)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앞장섰다. 1931년 6월 같은 학교 4학년에 재학 중, 경성알에스협의회(京城RS協議會)라는 비밀결사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RS란 ‘리딩 소사이어티(Reading Society)’, 즉 독서회 내지는 사회과학연구회라는 의미이다. 경성RS협의회는 1920년대 사회주의운동 계열 가운데 이른바 ‘엠엘계(ML係)’에 속했던 이종림(李宗林)·이평산(李平山) 등의 지도 아래 중동학교(中東學校), 중앙고보,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법정학교(法政學校),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同德女子高等普通學校) 등 서울 시내 각 학교 한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직된 비합법 독서회들의 지도기관 역할을 한 비밀결사였다. RS협의회에서는 일본제국주의 지배에 반대하여 각 학교의 동맹휴교를 지도하는 한편 학생의 자유회합 보장 등을 요구하는 삐라를 살포하였다. 경성RS협의회의 조직 경위를 살펴보면, 1929년 11월 이후 광주학생운동(光州學生運動)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이후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朝鮮共産主義者協議會)라는 비밀결사에 관계하면서 활동해오던 이평산 등이 특별히 학생층을 지도하여 이들의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비밀결사를 결성하고자 하였다. 이리하여 1931년 4월경 서울 시내 각 학교의 책임이 될 만한 학생들을 결집할 수 있었다. 중앙고보에서는 일찍부터 학생운동을 주도해오던 이상요(李相堯)가 이 준비 과정에 결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1931년 6월 상순경 이평산은 도쿄(東京)에서 들어온 최태룡(崔兌龍)에게 학생운동 관련 조직을 인계하고 자신은 노동운동에 전념하기로 하였다. 이후 최태룡을 중심으로 최삼경(崔三京)·박진홍(朴鎭洪) 등 3인이 서울 시내의 각 학교들을 분담하여 본격적으로 조직을 준비하였다. 당시 중앙고보를 담당했던 최태룡은 이상요를 중앙고보의 책임으로 선정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같은 해 6월 30일 정식으로 비밀결사 경성RS협의회가 조직되었으며, 최삼경이 조직조사부 책임, 최태룡이 교양부 책임, 박진홍은 부인부 책임을 맡았다. 협의회에서는 그 산하의 각 학교 학생그룹을 알에스(RS)라고 불렀다. RS협의회의 중앙고보 책임이 된 이상요의 권유로 이응엽(李應葉) 등과 함께 조직부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정식 조직 결성 직전인 1931년 6월 중순부터 그의 하숙집 등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다. 이상요로부터 『무산자신문』 등을 받아 읽고 시사(時事) 문제 등을 토론하거나, 『마르크스주의경제학』 등을 교재로 학습하였다. 또한 중앙고보 내 RS의 중심조직으로서 각자 동지 규합과 실력 양성에 노력하였다. RS협의회에서는 산하 RS 조직들에게 그 해 7월 10일을 기하여 일제히 동맹휴교를 단행하고 가두시위를 전개하기로 지시하였다. 이에 7월 8일 이상요·정일모(鄭日謨) 등과 함께 정일모가 홍병모(洪炳模)로부터 받아온 격문(檄文)의 살포 방법을 논의하였다. 결국 실패하여 정일모 집에서 이를 함께 소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활동을 계속하여 ‘경찰의 학교출입 금지’, ‘수업료 감하’, ‘노예교육 배척’ 등을 내걸고 동맹휴교를 선동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31년 11~12월경 서울 시내 각 학교에서 다수의 학생들과 함께 종로경찰서 고등계(高等係)에 붙잡혀 1932년 2월 15일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 등으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같은 해 2월 24일 각기병(脚氣病)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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