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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규

朴昌奎

1892. 8. 17 ~ 192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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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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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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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흠치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892년 8월 17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안동면(安東面) 송현동(松峴洞)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면서, 1920년 흠치교(吽哆敎)에 입교하여 활동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흠치교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이후 급진적 성격을 지닌 강일순(姜一淳)을 중심으로 시작된 신종교운동의 하나였다. 이후 차경석(車京石)이 교주(敎主)가 되어 교단을 이끌었다. 흠치교는 “종교를 표방해 치성비라고 하는 군자금을 모집하고 다수의 교인 집단을 만들어 1924년 갑자년(甲子年)을 기하여 국외에서 이미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다른 독립결사단과 호응하여 한국 독립운동을 개시할 것”이라며 선전해 자금모집과 교단 성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흠치교는 교주 아래로 60인의 고문을 두고 각 고문은 6인조를 두고 6인조는 다시 각 12인조, 12인조는 각 8인조, 8인조는 각 15인조 등 순서를 통해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조직을 갖출 수 있었다. 또한 각 조직별로 치성비(致誠費)라는 이름으로 6인조는 30원, 12인조는 15원, 8인조는 10원, 15인조는 5원을 거두어 종교 행사비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본부로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활용하였다. 1920년 (음)5월 안동군 안동면 송현동 소재 권영묵(權寧黙)의 집에서 흠치교 교도가 되었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 교도들이 일심동체(一心同體)할 것을 맹세하고, 12인조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주변 일대에 거주하는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독립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여 흠치교에 가입하게 했으며, 치성비라는 명목으로 독립운동 자금 15엔(円)을 제공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1년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미결구류일수 120일 본형에 산입)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1922년 2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1923년 7월 1일 안동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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