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왈명
朴曰明1887. 9. 11 ~ 1958. 5.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원군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관련 사건
- · 원군교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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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0) 1887년 9월 11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영산포(榮山浦) 이창(二倉, 현 나주시 이창동)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정목왈명(正木曰明)으로 고쳤다. 1939년경 원군교(元君敎) 교주 홍순문(洪淳文 山本淳文)과 교유하며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산내면(山內面)으로 이주하였다. 원군교는 강일순(姜一淳)을 교주로 하는 증산교의 일파로 ‘지상선경(地上仙境) 건설’이라는 목적을 이어받아 ‘후천선경(後天仙境)의 실현’을 교단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부안군 산내면 지서리(知西里)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1941년 12월경 홍순문의 지도 아래 원군교 신자가 되었다. 1942년 3월 24절기의 ‘경칩(驚蟄)’의 임원이 되었다. 홍순문은 “강일순의 신도조리공사(神道調理公事)에 의해 세계전쟁이 일어나고 가까운 장래에 전쟁이 끝날 것이며, 이때 한국은 독립하고 세계의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이때 신도들은 육신이 불로불사(不老不死)하는 복록(福祿)을 얻어 세계인류를 지도할 자격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같은 해 12월 교주 홍순문의 동생 홍순옥(洪淳玉)의 주도 아래 전북 부안군 산내면 지서리 산상에서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집회를 열고 증산교 교조 강일순의 재림과 조선을 독립을 기원하는 심고(心苦)와 묵허(黙虛), 기원제와 망량제를 거행하였다. 이를 통해 일제의 패망과 한국의 독립을 기원하고, 독립자금을 모금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1944년 1월 10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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