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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근

朴英根

1895. 12. 13 ~ 1968.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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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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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統營)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통영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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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통영노농청년연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통영노농청년연맹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895년 12월 13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조일정(朝日町)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양복업(洋服業)에 종사하면서 노농청년연맹에서 활동하였고, 김기정 징토대회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1926년 9월 6일 박태근(朴泰根)·최학기(崔學騏)·김재학(金在學) 등과 함께 통영 노농청년연맹을 조직하여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7일 러시아 혁명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한 기념식에서 ‘러시아 혁명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였다. 1927년 3월 15일 통영 부도정(敷島町)에 살고 있던 김원석(金元錫)이 ‘민족을 파는 상습범 김기정(金淇正)군을 징토한다’라는 제목의 선전문을 통영 읍내에서 유포하였다. 주요 내용은 “도평의원 김기정은 도평의회 석상에서 ‘보통교육을 폐지하라. 조선은 교육으로써 망국하였다. 조선어 통역을 철폐하라’라는 황당한 주장을 한 자”라는 주장이었다. 이른바 ‘통영 김기정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분개하여 통영 유지들과 함께 진상조사회를 꾸릴 것을 주장하였고, 박태근, 최학기 등이 참여한 가운데 진상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김원석의 선전문 내용이 사실임이 밝혀졌다. 같은 해 3월 25일 통영 대화정(大和町) 봉래좌(蓬萊座) 극장에서 김원석·박봉삼(朴奉衫)·박태근·최학기 등과 함께 진상보고회를 개최하였다. 약 6백 명의 군중에게 진상보고회를 갖게 된 경위와 조사한 내용을 상세하게 보고하였다. 이에 분개한 군중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시민대회를 개최하였다. 시민대회 현장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박봉삼을 대회의 임시의장으로 하여, “김기정을 사회적으로 절교할 것, 죄악을 전 조선 민중에게 공포할 것, 성토연설회를 개최할 것, 일체의 공직을 사임시킬 것” 등 5개의 결의사항을 채택하였다. 이 결의사항을 인쇄하여 통영 시민에게 배포하기로 결의하였다. 다음날인 26일에는 해당 인쇄물을 김기정에게 송부하여 결의사항을 전달하고, 같은 해 4월 8일에는 일체의 공직을 사퇴하라는 내용을 담은 서면을 보내면서 4월 27일 4시까지 이에 회답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김기정은 이에 응하지 않고 도리어 명예훼손죄로 통영경찰서에 동료들과 함께 고소하였다. 1927년 5월 9일 김기정의 고소로 박봉삼 등 10명과 함께 붙잡혔다. 5월 11일부터 검속당한 동료들과 함께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로 인해 사망자가 나왔다는 소문에 분개한 가족과 민중들이 통영경찰서 앞에 찾아가 항의하는 한편, 김기정의 집 앞에 모여 그를 비판하는 일이 발생하여 20여 명이 잡히기도 하였다. 1927년 10월 3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출판법 위반과 명예훼손죄 등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1928년 5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4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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