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종
朴鎬鍾1905. 11. 23 ~ 1940. 12. 2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공산주의자 진주지방협의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6)
관련 사건
- · 진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6) 1905년 11월 23일 경상남도 진양군(晋陽郡, 현 진주시) 금산면(琴山面) 가방리(加芳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字)는 성칙(聖則), 호(號)는 만촌(萬村)이다. 아버지는 박헌홍(朴憲鴻)이다. 경남 진주제일보통학교(晋州第一普通學校)에 입학 후 1919년 3월 진주군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이 일로 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이후 사재를 털어 야학을 운영하였으나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1925년 만주·대만을 거쳐 일본으로 밀항하여 학업을 이어갔다. 일본에서 오사카(大阪)의 방직공장에 취업한 후 한국인 노동자들과 비밀리에 노동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경 귀국한 후 고향에서 다시 야학회를 설립 후 교사로 활동하며 농민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한 농민운동을 전개하던 중 1932년 9월 진주 지역에서 송기호(宋畿鎬)·조삼수(趙三壽) 등의 주도로 조선공산주의자 진주지방협의회라는 비밀결사단체를 조직하자 이에 참여하였다. 산하에 농민위원회·노동위원회·학생위원회 등을 비밀리에 설치하였는데, 이때 농민위원회에서 금산면(琴山面)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농민위원회 회원 모집을 위해 금산면에서 농민들을 규합한 후 진주 읍내 남강에서 회합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932년 11월 4일 진주 시내 곳곳에서 격문이 발견되자, 사재를 털어 설립한 인쇄소에서 11월 7일 러시아혁명기념일을 기념하여 동맹휴교, 노동자 파업 등 실제 운동을 일으키고자 항일 격문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격문이 발견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곧바로 붙잡혔다. 이후 1933년 7월 31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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