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창
朴來昌1894. 2. 23 ~ 1971. 1.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94년 2월 23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 상금곡동(上)金(谷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1919년 용문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예천군 용문면 만세운동은 예천 권씨 종손이며 유림인 권석인(權錫寅)이 주도하여 일어났다. 권석인은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만세운동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는 독립선언서를 지닌 채 고향인 용문면 죽림동(竹林洞)으로 내려와 재종형(再從兄) 권석호(權錫虎)와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거사일은 예천 장날인 1919년 3월 12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를 여러 장 등사하여 각 마을에 배부하고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의 감시망이 점점 좁혀오자 부득이 날짜를 다음 장날인 3월 17일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3월 17일 거사 계획도 일본 경찰의 주시를 받게 되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거사가 두 차례 연기되는 동안 예천군 호명면(虎鳴面) 원곡동(原谷洞)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더 이상 만세운동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권석인 등은 1919년 4월 3일 저녁 긴급하게 연락을 돌려 사람들을 모았다. 저녁 9시쯤 죽림동에서 권석인·권석호·권세원(權世遠)·권석효(權錫孝) 등 예천 권씨가 주도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한 시간 뒤인 밤 10시경 면사무소가 있는 상금곡동으로 내려와 금곡동 사람들과 합류하게 되는데, 이때 시위에 참여하였다. 함께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은 권석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따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면사무소 앞을 지나 마을 각처를 돌며 만세를 외쳤고, 장터를 돌며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만세운동을 이어갔다. 이 소식을 접한 일본 경찰은 급히 출동하여 총검으로 군중을 위협하여 해산시켰다. 이와 동시에 주도자와 적극가담자에 대한 검거도 이루어졌는데, 주도 인물 11명을 현장에서 체포하고, 그 뒤에 다시 6명을 붙잡아 갔다. 이때 권석인·권석호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