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진
朴東鎭1899. 3. 9 ~ 1954. 6.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1)
관련 사건
- · 순창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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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1) 1899년 3월 9일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순창면(淳昌面) 순화리(淳化里)에서 태어났으며, 활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과 4월 순창면에서 만세시위를 촉구하는 문서를 작성해 게시하는 활동을 하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5일 자택에서 “조선독립단 만세(朝鮮獨立團 萬歲)”, “조선독립단 독립만세(朝鮮獨立團 獨立萬歲)” 등의 문구를 적은 문서 3통을 작성하였다. 이틀 뒤인 3월 17일 순창면 읍내의 장날에 맞추어 이날 새벽 1시경 이들 문서를 들고나가 순창군청, 순창헌병분견대와 순창학교 앞의 게시판에 각 한 통씩 부착하였다. 이후 전국 각 지방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4월 24일에도 다시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호소하는 문서를 작성하였다. 4월 25일 새벽 1시경 순창면사무소 게시판과 그 돌담에 이들 문서를 붙였다. 첫 번째 문서에는 “1919년 4월 26일 순창 장날에 순창 군민 중 20세부터 50세까지의 장정은 빠짐없이 모여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독립만세를 외치자”라는 만세시위 참여 권유를 담은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 두 번째 문서에는 “만세 독립만세(萬歲 獨立萬歲)”라는 구호를 중앙에 쓰고, 상하좌우에 “1919년 4월 26일 독립만세를 부르겠다. 조선인을 죽이려면 죽여보아라. 독립만세를 부르는 사람을 아무리 죽여도 이를 대신할 사람이 5천만이 있다.”라는 글귀를 기재하였다. 결국 이러한 만세시위를 촉구하는 문서 게시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혹독한 조사를 받고 기소되었다. 1919년 6월 2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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