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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돌

朴同乭

1891. 3. 27 ~ 1952.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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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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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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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원곡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3월 27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지문리(芝文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재성(朴在成)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안성군 원곡면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원곡면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28일부터 시작하여 4월 2일까지 이어졌다. 만세시위는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약 20~60명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시위는 점차 확대되어 3월 31일에는 군중이 약 200~300명으로 늘었다. 4월 1일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양성면(陽城面)으로 행진하였다. 행진 중 시위대는 양성면에 있는 일제의 통치기구인 순사주재소와 면사무소 등을 파괴하기로 결의하였다. 오후 10시경 양성면 양성주재소에 도착해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에 투석으로 유리창을 깨고, 사무실 내부 집기들을 불태웠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시위대와 함께 원곡면사무소에 도착하였고, 내부로 들어가 방화를 하는 등 격렬한 만세운동을 다시 전개하였다. 결국 만세시위 적극 가담자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모진 조사를 거친 후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경성지방법원을 관할재판소로 지정하였다. 그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공소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로 징역 2년 6월(구류 일수 중 500일을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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