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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백

朴道伯

1892. 4. 19 ~ 1939.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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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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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金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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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구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6) 1892년 4월 19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대저면(大渚面) 출두리(出斗里,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경남 동래군 구포면(九浦面, 현 부산광역시 북구 일대)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중순 구포면 출신의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학생 양봉근(楊奉根)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구포면 면서기 임봉래(林鳳來)를 찾아왔다. 양봉근은 임봉래에게 서울의 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임봉래는 윤경(尹涇)·유기호(柳基護) 등 지역 청년들과 함께 3월 29일 구포시장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결의하였다. 3월 29일 정오경 구포시장은 장날을 맞이해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임봉래 등은 장꾼들에게 준비해 온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이끌었다. 장터에 모여 있던 1,000여 명의 군중이 이에 호응하며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군중의 한 사람으로 시위에 참여하였다. 출동한 일본 경찰과 헌병이 시위를 폭압적으로 진압하며 김옥겸(金玉兼) 등 12명을 연행하였다. 이에 분개하여 시위 군중과 함께 구포경찰관주재소로 달려가 곤봉을 휘두르고 투석하며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책상과 의자 등 집기를 파손하였다. 이들이 김옥겸 등의 석방을 요구하자 일본 군경은 발포로 대응하였다. 이때 일본 군경이 쏜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시위 주도자로 붙잡혔다. 1919년 8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3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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