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문
朴道文1899. 6. 21 ~ 1971. 9.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영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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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9년 6월 21일 경상남도 창녕군(昌寧郡) 영산면靈(山面) 서리(西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3일 동료들과 함께 영산면 읍내 만세시위를 준비해서 이끌었다. 창녕군 지역의 만세운동은 천도교도인 구중회(具中會)·장진수(張振秀)·김추은(金秋銀) 등을 중심으로 준비되었다. 이들은 1919년 3월 12일 구중회 집에서 모여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해 목숨을 건 투쟁을 전개하기로 하고, 이튿날인 3월 13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3월 13일 동지를 규합해 영산면 앞 남산(南山)에 함께 올랐다. 이곳에서 「결사단원 맹세서」라는 제목의 문서를 작성하고, 각자 서명을 하였다. 이날 23명의 결사단원 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오후 2시경 구중회 등 동지들과 함께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영산 읍내로 들어갔다. 이때 징과 북을 두드리고 전진가(前進歌)라는 노래도 함께 불렀다. 읍내 거리를 누비며 만세시위를 벌인 후 일단 해산하였다. 창녕경찰서에서 영산면으로 경찰을 급파하였는데, 이들은 영산에 도착하자마자 구중회·장진수·김추은 등 주도자를 창녕경찰서로 연행하였다. 이에 남은 동지들은 오후 8시경 다시 남산에서 긴급 모임을 갖고 창녕면 읍내로 몰려갔다. 시위대는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읍내 곳곳을 행진하였는데, 그 곳에 있던 수백 명의 군중이 이에 호응하여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의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는데, 원심 검사가 항소하였다. 그 해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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