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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해

朴達海

1886. 5. 1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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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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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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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강서(江西)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강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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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관련 사건

  • · 초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6) 1886년 5월 14일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 초리면(草里面) 송호리(松湖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초리면에 위치한 보신학교(普信學校)에서 거행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 진남포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독립선언과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평양의 만세시위는 기독교도와 천도교도가 중심이 되어 서울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며 전개되었다. 강서군은 평양과 인접해 있어 평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교적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 평양의 소식이 초리면에 전해지자 그간 참아온 분노가 폭발하며 이제야 비로소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1919년 3월 5일 밤 초리면 이로리(伊老里) 기독교계 보신학교에서 기도회가 열릴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송호리 주민들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약 40여 명이 모이자 목사 김건후(金鍵厚)가 군중 앞으로 나와 기도회를 주도하였다. 그는 파리강화회의의 내용을 설명하며 “조선도 마침내 독립국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김건후는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때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여러 번 외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후 보신학교 기도회에서 독립 만세를 부른 이유로 송호리 주민 2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18일 평양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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