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직
權大稷1853 ~ 1930. 4. 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의성의진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황산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53년경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점곡면(點谷面) 서변리(西邊里)에서 아버지 권철(權澈)과 어머니 용궁 김씨龍宮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순백(舜伯)이며, 호는 만포(晩圃)이다. 의성군 점곡면 사촌(沙村)에 세거한 안동 권씨(安東權氏) 부정공파(副正公派) 32세손으로 당시 집안은 천석(石) 정도의 부유한 가세(家勢)를 유지하고 있었다. 의성 지역 유생들은 을미사변과 단발령 공포에 항의하여 1896년 3월 3일경 향교에서 통문을 돌리고, 3월 13일 향회(鄕會)를 열었다. 이에 따라 의성 유생들과 함께 3월 25일 의성의병을 결성하고 김상종(金象鍾)을 의병장에 추대하였으며, 자신은 중군장(中軍將)을 맡았다. 의성의병의 편제는 창의장 김상종과 아우 김회종을 비롯하여 선봉장 김수담(金壽聃), 소모장 김수욱(金壽旭), 관향장 김수협(金壽莢) 등으로 김상종의 족숙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외 박제숙(朴齊肅)을 비롯하여 권휘연(權徽淵)·서상부(徐相孚) 등은 모두 점곡면 일대에 거주하던 유력한 유림이었다. 4월 2일 대구진위대와의 구봉산전투(九峯山戰鬪)에 참여하였다. 의성의병은 대구진위대의 공격에 대비하여 4월 1일 의성읍 구봉산에 진을 쳤다. 4월 2일 새벽에 대구진위대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투에서 일시적으로 승리하였지만, 끝까지 방어하지 못하고 의성에서 물러났다. 창의장 김상종 등과 함께 남은 군사를 수습하고 전열을 정비하였다. 그리고 각처를 전전하다가 4월 11일 의성군 옥산면(玉山面) 입암리(立巖里)에 있는 황산(黃山)으로 들어가 진을 쳤다. 5월 10일 의성의병은 황산에 주둔하던 중 대구와 군위에서 파견된 관군과 크게 싸웠다. 뜻하지 않게 큰비가 내려 빗속에서 격전하였으나 화약이 진흙이 되어 총을 쏠 수 없게 되었다. 권휘연·서상부·김수담·김수협 등 27명이 전사하였으며, 의병장 김상종의 고향인 사촌(砂村)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황산전투에서 패하고 남은 군사를 이끌고 청송으로 들어가 이천의병과 연합하여 감은리전투 등을 치렀으나 패하고 김상종과 함께 의병부대를 해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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