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학
閔泳學1916. 5. 8 ~ 1945. 1.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고려독립청년당
포상 정보
- · 애국장(2008)
관련 사건
- · 고려독립청년당 사건
- · 암바라와 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8) 1916년 5월 8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황간면(黃澗面)에서 태어났다. 일제 말기에는 일본식 성명 강요로 개명된 강전영학(岡田泳學)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1942년 5월 일본군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되었고, 인도네시아에서 암바라와 의거를 일으켰다. 태평양전쟁기 일본제국주의는 침략전쟁의 최전선에 배치할 한국인 포로감시원을 배치하기 위해 지역별로 지원자를 할당한 후 총 3,000명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였다. 이들은 부산에 있는 육군부산서면임시군속교육대(陸軍釜山西面)臨(時軍屬敎育隊)에서 2개월간 기본 훈련을 받았다. 당시 임시군속교육대는 부대장을 이름을 따서 노구치(野口)부대라고 불리었다. 이곳에서 포로감시에 대한 교육을 받고 1942년 8월 국내를 떠나 9월 14일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위치한 딴중 쁘리옥(Tanjon Priok) 항구에 도착하였고,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일본군 지시를 받으며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게 되었다. 군속으로 자바섬에 오게 된 한국인 포로감시원들은 1944년 6월부로 2년의 계약이 만료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일제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 무렵 인도네시아 각지에 있는 한국인들이 조직적으로 연락하여 고려독립청년당(高麗獨立靑年黨)을 결성하였다. 고려독립청년당에는 자카르타, 세마랑(Semarang), 스모워노(Sumowono), 암바라와(Ambarawa) 각지에 있는 한국인들이 연락을 취하며 참여하고 있었다. 암바라와에 있던 중 손양섭(孫亮燮), 노병한(盧秉漢) 등과 함께 고려독립청년당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1945년 1월 3일 중부 자바의 암바라와에서 말레이반도 포로수용소로의 전출 명령을 받게 되었다. 갑작스런 전출 명령에 고려독립청년당 조직의 정보가 누설된 것으로 판단하고, 일본군에 대한 항쟁을 계획하기 시작하였다. 1월 4일 전출 명령에 따라 세마랑지역으로 이동하는 도중, 일본군 자동차를 탈취하여 암바라와에 주둔한 일본군 분견소에 잠입하고, 무기고에서 기관총과 탄환 등을 확보한 후 일본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일본군에 대한 항쟁은 분견소, 일본군 형무소 등에 대해 이뤄졌다. 먼저 분견소를 공격한 일행은 일본군의 억류소와 어용상인 등을 공격하고, 형무소장을 처단하였다. 일시적으로 잠복해 있는 사이 암바라와 일본군 병력은 타 지역에서 추가 병력 증파를 요청하였다. 수십명의 일본군에 의해 포위된 이들은 격렬하게 교전을 벌이다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었고, 일본군 병력에 의해 포위된 상황에서 결국 자결하였다. 함께 항쟁하던 노병한과 손양섭도 뒤이어 자결하였다. 암바라와 의거는 고려독립청년당 일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들은 제2차 의거를 계획하였다. 한편 인도네시아에 주둔한 일본군은 엄청난 위기 의식을 갖고, 대대적으로 한국인 저항 세력 색출에 나섰다. 고려독립청년당원들은 결국 일본군에 의해 발각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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