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하
朴敬夏187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을사오적 암살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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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서울 남대문 밖(南門外) 연화봉(蓮花峰,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74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김석항(金錫恒)·기산도(奇山度) 등이 이완용(李完用)·이지용(李址鎔)·박제순(朴齊純)·이근택(李根澤)·권중현(權重顯) 등 을사오적 처단을 위한 결사대를 조직하자 이에 합류하였다. 김석항의 지원으로 단도와 권총 등을 구입한 뒤 결사를 실행할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였다. 김일제(金一濟)의 제안에 따라 을사오적을 직접 처단하는 것보다 오적의 부형(父兄)을 먼저 응징하여 그들의 기세를 꺾어 놓기로 결정하고, 제일 먼저 군부대신 이근택의 부친인 이민승(李敏承)을 처단하기로 하였다. 1905년 11월 23일 밤 기산도·김성초·이근철 등 7명과 함께 단도·권총·몽둥이 등을 나눠 들고, 이민승의 집을 찾아갔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을사오적을 응징하기 위해 종로에서 매복하던 중 이근택을 만나 처단하려 하였으나, 경계가 엄중하고 보호하는 사람들이 많아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에 광군(磺軍)을 모집하여 을사오적이 지나갈 때 돌을 던지게 하여 경호 인력을 흩어지게 한 후 거사에 착수할 계획을 세웠다. 광군 모집의 임무를 부여받은 후 용산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일장 연설을 통해 공분을 토로하며 동지를 모으고자 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11월 28일 오전 서울 중서(中署) 이동(泥洞)에 위치한 한성모(韓聖模)의 집에 모여 최후의 거사를 준비하던 중 결사대원 5명과 함께 붙잡혔다. 경무청에 이관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당시에는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났다. 1906년 2월 16일 기산도·이석범(李錫範)·이근철(李根喆)이 이근택의 집을 습격해 공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 일에 연루되어 2월 18일 다시 붙잡혔다. 1906년 5월 13일 평리원에서 이른바 모살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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