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일
權玳一1859 ~ 189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안동의진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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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59년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서후면(西後面)에서 향리 가문의 셋째아들로 태어났으나 다른 집안의 대를 이을 양자로 갔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종오(宗五)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의 소식을 듣고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양부의 상중(喪中)임에도 불구하고 분개하여 생부에게 말하기를 “나랏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저는 차마 원수인 적들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늙으신 아버님을 돌보아드려야 하는데 다행히 두 형이 있으니 원컨대 아버지는 저를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하니, 아버지는 슬퍼하며 허락하였다. 1895년 (음)12월 원근에 「안동하리통문(安東下吏通文)」을 돌리고 동지를 규합하여 창의하였다. 1896년 (음)2월 15일(양 3.28) 안동(安東)·예안(禮安)·풍기(豊基)·순흥(順興)·영천(榮川)·봉화(奉化)·호좌의진(湖左義陣) 등 7읍 연합 의병부대가 함창(咸昌) 태봉(胎峯)의 일본군 병참부대(兵站部隊)를 공략하여 선전하였으나 패하고 말았다. 태봉전투 패퇴 이후 일본군과 경병(京兵)이 안동으로 들어오자 안동의진은 서후면 학가산(鶴駕山)에 있는 광흥사(廣興寺)로 물러나 주둔하고 있었다.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의병 진영에 말하기를 “대장부가 거의(擧義)하였으니 죽을 따름이라. 어찌 칼날을 거두어 목숨을 보전할 생각이나 하랴”라고 부르짖었다. 같은 해 (음)2월 20일 스스로 선봉이 되어 의병 100여 명을 거느리고 안기역(安奇驛)의 뒷산에 진을 쳤다. 그러나 적을 보고 도망하는 자가 과반이었으므로 칼을 빼들고 “도망하는 자는 참(斬)하겠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더 동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남은 의병 30명만으로 적진으로 돌진하여 목숨을 내놓고 싸우다가 힘이 다해 죽었다. 당시 나이 38세였다. 안동의진의 의병장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는 만사(輓詞)에서 ‘열사(烈士)’라고 칭송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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