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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수

朴基秀

1924. 6. 9 ~ 1987.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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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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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대구(大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대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간사이동지회
  • · 독립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영천 신사 방화 미수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24년 6월 9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간사이동지회를 조직하였고, 경북 지역에 독립당을 만들어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오사카부립공과학교(大阪府立工科學校) 야간부(夜間部) 학생으로 있던 1939년 3월 동포 유학생들을 규합하여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조만간 일제의 패망과 조국의 독립이 다가올 것임을 역설하면서 항일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1940년경에는 오사카부(大阪府) 내 오사카기공창(大阪機工廠)에서 인부로 일하면서 공장의 위치나 구조와 생산 수량 등을 조사하여 ‘북만지구(北滿地區) 공작본부(工作本部)’에 보고하기도 하였다. 그 무렵 오사카부 내에서 김태길(金泰吉)·김택환(金宅煥) 등과 함께 ‘조선인 간사이동지회(關西同志會)’를 조직하여 각 학교에 조직책을 두고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1년 4월 김태길·김택환과 함께 형무소로 이감되던 도중 탈출하여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시로 국내로 들어와 경북 지역에 독립당(獨立黨)을 조직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 박만선(朴晩善)·김영길(金永吉)·이영환(李榮還)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1943년 4월 경북 영천군(永川郡) 교촌동(校村洞)에 있는 영천신사(永川神社)를 방화하였으나, 마침 순찰 중인 순사에 의해 조기에 진화되었다. 이어서 대구신사(大邱神社)도 방화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5월에는 대구 주둔 일본군 80연대 내에 세균을 투입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밤중에 대구 시내 관공서에 태극기를 내걸고 곳곳에 일본군의 패전(敗戰) 상황을 알리는 유인물을 살포하였으며, 일본군 24부대 내의 병기고(兵器庫)를 폭파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1944년 8월 23일 경북 영천군 영천읍(永川邑)에서 동지들과 함께 일본헌병대 대위 간다(神田)가 인솔하는 헌병들에게 포위되어 붙잡혔다. 1945년 5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과 조선임시보안령 위반, 불경죄, 방화예비죄 등으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를 맞이하면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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