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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훈

文士勳

1903. 12. 24 ~ 1979.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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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문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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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靈巖)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영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청년회
  • · 공산주의자협의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영암농민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3년 12월 24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영암면(靈巖面)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남평(南平), 문일선(文日善)의 3남으로 태어났다. 호(號)는 송헌(松軒)이고, 항명[(行名), 보명(譜名)]은 문영태(文永泰)다. 이명으로 문순조(文順兆)·문사원(文士元)을 사용하였다. 1931년 영암면 교동리(校洞里)에서 동네 청년들을 규합해 청년회를 조직하였다. 일제강점기 이래로 영암을 비롯한 전라남도 일대는 일제가 세운 농업회사들과 대지주들이 다수의 토지를 점유하고 있었는데, 불리한 소작 조건을 강요하고 소작권을 전횡하여 토지 경작 권한을 빼앗아 농민들은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적 성향을 띤 농민조합의 결성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청년회 역시 공산주의운동 참가 경력을 가진 최판옥(崔判玉)·김판권(金判權) 등의 인사를 초빙하여 “무산자는 일치 단결하여 단체의 힘에 의해 자본계급에 대항하고, 사유재산제도를 철폐하여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시켜야만 한다.”라는 요지의 강연을 실시하는 등 항일·사회주의적 성향을 띠었다. 1932년 3월 청년회원 박수봉(朴壽奉)·신용주(愼鏞周)·신용점(愼鏞點) 등과 함께 덕진면(德津面) 운암리(雲岩里)에서 자행되고 있는 소작권 임의박탈 문제를 논의하였다. 3월 22일 밤 청년회관에서 박유성(朴裕成) 등 수십 명을 소집한 자리에서 소작권이 이동된 토지를 점거하여 청년회원들이 경작하기로 결의하고, 이튿날인 23일과 4월 30일, 5월 15일 3회에 걸쳐 이를 실행하였다. 한편 최판옥·김판권 등 영암 내 공산주의자들은 1932년 4월 18일 덕진면 영보리(永保里)의 산속에서 공산주의자협의회(共産主義者協議會)라는 비밀결사를 창설하고 소작권의 임의 이전에 반대하는 시위를 노동절인 5월 1일에 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경찰의 경계가 엄중한 탓에 (음)5월 1일에 해당하는 6월 4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운동 당일 산유회(山遊會)를 명목으로 영암 일대 농민들을 규합하자 이때 같이 참여하였는데, 그 자리에 모인 70여 명의 농민과 함께 무분별한 소작권 이동을 규탄하는 시위를 결의하였다. 이어 ‘소작쟁의만세’ 구호와 노동가를 제창하면서 운암리를 행진하였고, 친일 지주와 새로이 소작권을 얻은 농민들의 집을 공격하였다. 이에 출동한 일제 경찰이 시위 참가자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였고, 6월 10일 붙잡혔다. 이후 일제가 소작쟁의를 사상사건으로 간주하면서 시위의 주도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1932년 7월 23일 장흥검사국을 거쳐 7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 송치되어 형사재판에 회부되었다.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때 미결 구류 일수 240일이 형기에서 차감되어 풀려났다. 그렇지만 일제가 1932년 6월 이래 장기간 목포형무소에 구금한 상태에서 조사와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이 기간을 포함한 수형기간은 1년 3개월에 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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