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섭
文命燮190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애국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한독립애국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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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강원도 양양(襄陽) 출신이다. 1920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21세로, 1900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대한독립애국단 양양군단에 소속되어 활동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하자 국내 각지에서는 임시정부의 활동에 호응하며 이를 지원하려는 단체들이 조직되었다. 1919년 5월 신현구(申鉉九)를 중심으로 서울 화천정(和泉町, 현 서울특별시 중구 순화동)에서 창설된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은 각도에 도단(道團)과 군단(郡團)을 설치하고 군자금과 애국지사를 모집하려 하였다. 1919년 8월경부터는 강원도에도 도단과 그 아래에 각 군단이 설치되었다. 10월경 이근옥(李根玉)·김형석(金亨錫)을 중심으로 양양군단이 설치되었는데, 이전부터 이근옥과 뜻을 같이하고 있었으므로 바로 군단에 가입하였다. 10월 하순 무렵 이근옥·이석규(李錫圭)·김연수(金延洙) 등과 함께 상하이의 임시정부를 찾아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의하고, 여비를 조달해 열차로 철원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10월 30일경 철원군단의 이연수(李延洙)와의 접선에 실패하였고, 이후 서울의 애국단 본부를 방문해 상하이로 도항할 방책을 찾으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향하게 되었다. 이후 1920년 1월 대한독립애국단의 동향을 포착한 일제 경찰이 강원도단의 간부 조종대(趙鍾大)를 체포하면서 다른 강원도단 단원들과 함께 붙잡혔다. 경성지방법원으로 송치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10월의 예심에서 김상덕 등 34인과 함께 공판에 붙여졌다.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공판에서 검사는 이근옥의 권유에 응하여 상하이로 건너가려 한 것은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12월 23일 열린 1심 최종 판결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소지가 있으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재판장 이토(伊東浮吉)의 판결에 따라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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