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권
朴湳權1898. 12. 2 ~ 1960. 9.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7)
관련 사건
- · 합천군 야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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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7) 1898년 12월 2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야로면(冶爐面) 정대리(汀坮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농업을 본업으로 하였지만, 소규모 제지(製紙) 공장도 운영하고 있었다. 1919년 합천군 야로면 읍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합천군은 경남에서 만세운동이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난 지역이다. 그 배경에는 전통적으로 민족주의가 강한 지역 정서와 함께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과 독립선언서가 군내 각 지역에 다양한 방법으로 활발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군내 각 면들이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으로 거사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크고 작은 만세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종적으로는 연합시위로 발전하면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합천 군내에서 만세시위가 진행되고, 일본 군경의 발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뜻을 같이 하는 지역 인사들과 함께 거사를 준비하였다. 만세시위를 1919년 3월 28일 읍내 장날에 단행하기로 하고, 시위에 필요한 도구도 준비하였다. 태극기를 제작하고, 특히 장터 한복판에 세울 ‘대한제국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도 제작하였다. 3월 28일 자신이 운영하는 제지 공장 직원 문창성(文昌星)과 함께 태극기 등 만세시위 도구를 챙겨서 야로면 장터로 갔다. 읍내 장터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든 오후 3시, 준비해 온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주고 ‘대한제국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문창성과 함께 들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수십 명의 군중이 만세를 부르며 호응하였다. 군중의 선두에 서서 만세를 연호하며 읍내 장터를 행진하자, 인근의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폭력적으로 시위를 진압하였다. 시위대는 해산할 수밖에 없었고, 문창성과 함께 일본 헌병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문창성과 함께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형이 가볍다는 이유로 검사 측에서 항소하였고, 그 해 5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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